태연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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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의 목적

2019.11.15
Special

태연의 목적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이 가장 뛰어난 아이돌. 아이돌 그룹 멤버 중 가장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는 아티스트. 아이돌들의 아이돌. 태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가 소녀시대의 멤버로서 가요계에 발을 디뎠던 그 순간부터 찬사 일색이었다. 거기에 과장이 거의 섞이지 않았다는 건 그가 얼마나 안정적인 아티스트로서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28일 공개된 그의 두 번째 앨범 [Purpose]를 들으며 지금까지 태연에 대해 나왔던 이야기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다만, 태연은 우리가 흔히 던졌던 찬사에 담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 | 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 'Find Me', 좀 더 나다운

일반적인 팝의 기준으로 바라봤을 때 [Purpose]는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앨범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태연의 디스코그래피를 계속 체크해 왔던 이라면 이 앨범이 노랫말 면에서나 음악적 면에서나 가장 어두운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것이다.

묵직한 베이스라인 속에서 "하하하 웃지 / 또 하하하 억지"라는 차가운 목소리만이 들리는 '하하하 (LOL)', 비명에 가까운 코러스와 섬뜩할 정도의 음 분리를 박음질하는 'Better Babe' 같은 트랙이 그 어두움을 주도하지만, 자유자재로 분위기를 타고 넘는 타이틀 트랙 '불티 (Spark)'와 "더 이상 추락 따윈 나에겐 의미 없어"라는 의지가 드러나는 'Find Me'에서조차 이전 작품에서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비장함과 무게감이 감돈다.

이러한 톤의 변화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온전히 아는 것은 태연뿐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내 모습들에 / 더 깊이 갇힌 듯해"라고 절규하듯이 노래하는 목소리 속에서('Here I Am'), 그리고 "이번 앨범은 더 애착이 가요. 더 "저"스러운 앨범"이라고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통해 짐작을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태연은 [Purpose]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고, 그것은 이전 작품들이 지닌 방향성으로는 온전하게 전달되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단순히 밝지만은 않은 "부정적"인 감성을 전달할지라도, 태연은 [Purpose] 안에서 그것을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Something New', 변화의 궤적

그 어두운 방향성으로의 전환은 이미 감지된 바 있다. 2018년 발표된 'Something New'의 그루비한 베이스 소리 위에서 태연이 들려줬던 목소리는 불꽃이 터지듯이 환했던 이전까지의 보컬과는 달리 힘을 한 움큼 덜어낸, "진짜 깊은 마음속 소린 외면한 채로 / 모두 정신없이 찾고 있지 Something New"라는 가시가 담긴 가사를 매끄럽지만 날카롭게 전달하기 위한 유려함을 갖추고 있었다. 올해 봄 공개된 '사계 (Four Seasons)'에서는 오래된 신파에 어울릴 법한 옛 가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감각의 사운드 속에서 "다른 걸 좀 보고파"라고 읊조렸다.

그렇다고 해서 태연의 이전 디스코그래피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변화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지금, 나는 태연이 얼마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는지를 사후적으로 체감한다. 세계로 뻗어나갈 듯이 힘차게 "But strong girl / you know you were born to fly"라고 외쳤던 아레나 넘버 'I'에서, "내 자신이 할 수 있다 믿"으며 날개를 펼치는 '날개 (Feel So Fine)'에서, 태연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계속해서 노래해 왔고, 그 노력은 '먼저 말해줘 (Farewell)', 'When I Was Young' 같은 전형적인 발라드 넘버에서부터 'Rain'과 '11:11'과 같이 변주를 가한 미드템포 발라드, 다채로운 사운드의 댄스 트랙으로 꽉 찬 [Why]와 같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형태로 발현되어 왔다.


# 'Gravity', 강렬한 힘이 되어

어쩌면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태연에 대해서 "완벽함"이란 부분에만 초점을 맞춰서 생각해 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태연의 음악적 문법은 솔로 데뷔작 [I]에서 이미 완성되었던 상태였다. 김윤하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작품은 ""아이돌_그룹의_메인_보컬이_솔로데뷔에서_흔히_저지르는_실수.txt" 파일을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온 듯한 모범생적 영민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초기부터 확실하게 기반으로 삼을 수 있는 퀄리티적 기반을 다져 놨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그 이후"에 대한 여지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태연은 그 이후로 디스코그래피를 쌓아 나가면서 점진적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방향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곡선을 그려 나가고 있다. 일순간 주목을 끌어모으는 아티스트의 그것처럼 자신의 스타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양자 도약과 같은 시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 곡선이 상대적으로 밋밋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중음악 장르 중에서도 자기복제가 가장 심한 축에 속하는 발라드의 영역 속에서, 태연은 그 장르적 수렁에 빠지지 않는 생생한 결과물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나는 그 행보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노래하는 태연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장 완벽한 곳에서 출발했던 그는 자신을 잃지 않은 채로 지금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중력이 되어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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