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펜을 잡다 – 작사하는 아이돌 (下) [웹진웨이브]

매니아의 음악 서재

아이돌, 펜을 잡다 – 작사하는 아이돌 (下) [웹진웨이브]

2018.08.10
Special

아이돌, 펜을 잡다 – 작사하는 아이돌 (下)

지난 회에서 다뤘던 세 명의 작사가 아이돌은 주로 솔로 활동이 돋보였던 아티스트들이었다. 이번 화에서는 반대로 그룹의 가사를 주로 담당하는,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룹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이들 중 주목할 만한 세 명의 아티스트를 선택했다. 세 명 모두 작사뿐만 아니라 송라이팅과 프로듀싱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하는 다재다능한 멤버들이다. 이번 화를 작성하는 데 커다란 참고점이 되어 준 인터뷰집 "아이돌의 작업실", 그리고 저자 박희아 필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글| 정구원 (웹진웨이브 편집장)

# WOOZI

청량함은 생동감으로부터

"감탄하게 될 우리 단단함이
만들어내 가는 기막힌 이 조화"
('Shining Diamond')

세븐틴의 첫 작품 [17 Carat]의 첫 번째 트랙 'Shining Diamond'에서 위에 나온 표현을 처음 접했을 때, 자신감 넘치는 포부를 참 괜찮은 언어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잘못된 인상이 아니었으며, 그 중심에는 역시 세븐틴 음악의 중핵을 담당하는 멤버 WOOZI가 있다. K-Pop 신 내에서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멤버 수를 토대로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면서도, 청량함과 소년미를 언제나 그 모습들 안에 담아두고 있으니까.

그것은 그가 쓰는 가사에서도 변함없이 드러난다. '만세'나 '예쁘다', '아주 NICE'에서 사랑에 빠져 어쩔 줄을 모르는 소년이나 '울고 싶지 않아', '모자를 눌러 쓰고', '몰래 듣지 마요' 등 상실과 아픔을 깨우친 이, '이놈의 인기', 부석순의 '거침없이' 같은 웃음이 나오는 스왝 등 여러 입장의 화자를 오고 가는 WOOZI의 가사를 한 줄로 연결하는 것은 다른 아이돌 그룹의 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면서도 고운 표현들이다. "우린 서로를 선택했고 나노 단위로 집중해" ('예쁘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박수') 같은 기발한 표현이나 "잠깐 소녀야" ('만세') "그대는 어떤가" ('어쩌나') 같은 예스러운 말투 같은 요소가 아이돌 노래의 가사에 등장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하지만 WOOZI는 그것을 단순히 가사에 넣는 정도가 아니라 각 곡을 청자의 머리에 각인시킬 킬링 파트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세븐틴을 일컬을 때 흔히 쓰이는 표현인 '청량함'이 생명력을 얻는 것은, 전문 작사가나 프로듀서의 작사와는 차별화된 감성을 선사하는 WOOZI 특유의 생동감 있는 표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리고 그 가사는 "야, 이거 저거 다 던져봐!" 하면서 멤버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내는 데서 탄생하는 바도 크다고 하니,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기막힌 시너지라고밖에 할 수 없지 않을까.

# LE

숨김 없는 솔직함

"이젠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아
이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 말야"
('Boy')

그룹의 메인 송라이터이자 작사가인 LE가 주로 담당하는 EXID의 노랫말은 흔히 "솔직하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 이야기의 차원은 섹시한 콘셉트를 주로 내세우는 그룹의 전략과 섞이면서 단편적인 인상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LE의 가사를 그저 솔직한 가사라고 단순하게 판단하고 넘기는 건 그의 가사가 담은 에너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이 아닐까? 그의 가사는 걸그룹 신에서 보기 드문 직접적인 섹슈얼리티를 숨기지 않고 표현하고 있으니까.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요" ('L.I.E')처럼 직설적인 악담에서부터 "떨리는 동공 더더더덜 / 머리 굴리는 소리 안 나게 좀 해봐" ('덜덜덜')같은 씹어 뱉는 듯한 랩에 이르기까지 LE의 가사는 공격적일 때는 한없이 기억에 박히는 펀치라인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러면서도 유혹을 던질 때는 "빙글빙글" 돌리지 말고 "아슬아슬하게" 스치지 말라는 자극적이지만 깔끔한 단어 선택이나, "낮보다는 밤에 와 / 내일 또 와 아주 캄캄한 밤일수록 좋아"라고 분위기 있으면서도 돌려 말하지 않는 섹슈얼리티가 돋보인다.

팜므파탈적인 유혹부터 분노로 가득 찬 얼굴, 흔들리는 관계에 아파하는 마음까지 온도차가 커다란 여러 화자를 이리저리 오고 감에도,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에서 섹슈얼리티란 요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함에도, 그것이 갈팡질팡거리거나 불쾌한 인상으로 남지 않는 것은 LE가 그려내는 화자가 언제나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뭐래도 내가 다 괜찮다는데" ('데려다줄래')라는 다짐이나 "이젠 누군가가 필요한 것 같아" ('Boy') 같은 바람에서 예상보다 큰 감흥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LE가 쓰는 가사가 솔직해지는 지점은, 나 자신이 느끼는 바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순간이니까.

# 라비

사슬에 감도는 향

"정적 속에 갇힌 채
이 고요함 주변에 맴돌면서
너를 기다려"
('Silence')

라비의 창작욕은 왕성하다. 지금까지 그가 내놓은 솔로 레코딩만 미니앨범 1집과 믹스테이프 3장. 솔로 아이돌이 아닌 그룹의 멤버로서 이 정도로 많은 작업물을 발표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아직 나의 / 남은 꿈이 너무 많아서 / 자도 또 자도 도저히 잔 것 같지 않아" ('Where should I go')라고 거친 숨을 내뱉는 라비의 모습은 하나의 가정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혹시 빅스라는 "사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는 시도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가정을 생각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빅스의 음악에서 랩이 너무 돋보여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꼭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야 한다기 보다는, 나 자신이 생각하는 빅스를 해석해서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비는 빅스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팀이라는 가치를 우선시할 줄 아는 멤버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태도는 "난 너를 위한 장난감 목숨은 늘 간당간당해" ('다칠 준비가 돼 있어'), "넌 나의 사랑이자 독재자" / "감옥이자 paradise" ('사슬 (Chained Up)') 등의 인상적인 표현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크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라비의 랩메이킹 및 작사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연약한 화자를 그려내는 빅스라는 그룹의 캐릭터성을 한층 살리는 역할에 충실히 복무한다. 사실, 그러한 노랫말을 귀로 전달해내는 그의 목소리조차도 그러하다. 아이돌 그룹의 래퍼 멤버 중에서도 누구보다 강렬하고 알아차리기 쉬운 톤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공격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솔로 작업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 빅스 안에서는 언제나 한 줄기의 상처를 랩에 담아내는 것이 그다. 그것을 프로페셔널한 모습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빅스라는 향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꽃잎 중 하나가 그의 가사라고 여기고 싶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