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펜을 잡다 – 작사하는 아이돌 (上) [웹진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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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펜을 잡다 – 작사하는 아이돌 (上) [웹진웨이브]

2018.07.27
Special

아이돌, 펜을 잡다 – 작사하는 아이돌 (上) (정구원)

아이돌이 자신의 노래를 위한 가사를 직접 쓴다는 것은 흔히 자신의 음악적 역량과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를 온전히 펼치는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아이돌에 대해 여전히 삐딱한 시선을 가진 사람은 물론이고, 아이돌의 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통용되고 있는 논리다. 하지만 그런 시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자신이 쓴 가사가 아닌 전문 작사가나 프로듀서가 쓴 가사를 부른다고 해도, 해당 아이돌이 부르지 않았다면 그 가사는 결코 "음악"으로서 기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이런 생각도 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아이돌이 "작사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는 집중하면서도, 그 아이돌이 "무엇을 어떻게" 작사했는지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사가 곧 "음악적 진정성"으로 이어지는 단순한 논리 앞에서, 우리는 아이돌이 쓴 가사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접근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회와 다음 회 "아이돌 탐구생활"에서는 그러한 낡은 명제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고자 한다. 날렵한 쾌감을 지닌 자기 과시부터 감정을 그려내는 가사까지, K-Pop 신에서 가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아이돌을 만나보자.

글 | 정구원 (웹진웨이브 에디터)

#G-DRAGON

가장 묵직한 SWAG

"Yes sir I'm one of a kind
난 재주 많은 곰 No
곰 보단 여우"
('One Of A Kind')

"스왜그"라는 요소가 한국 대중음악의 가사에서 한 축을 차지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누군가는 여기에 대해서 "대단하지도 않은 뮤지션들이 과장을 부린다"라고 비난하지만, 꼭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스왜그가 가지는 쾌감이 아티스트가 지닌 실제 지위보다는 과장을 얼마나 위트 있게 풀어내느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온갖 가사에 넘쳐나는 워드 플레이(wordplay)들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너무 나간 감이 있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진짜로 대단한" 뮤지션인 G-DRAGON의 가사에서 드러내는 스왜그가 왜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뻑이가요'나 '쿠테타'의 오만한 뻔뻔함부터 '뱅뱅뱅' 및 '개소리'의 정신없는 에너지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의 스펙트럼은 GD 특유의 꼬인 발음과 비음 섞인 톤, GD가 아니라면 소화해내기 힘들 날렵한 플로우와 결합해 지울 수 없는 인상을 형성해낸다. 단순히 자랑을 신선하게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강점과 연결시키고 하나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로 활용하는 것, GD의 가사에는 그러한 묵직한 스왜그가 존재한다.

물론 그러한 가사를 쓰는 것이 가능한 건 역설적으로 GD가 스왜그에만 매몰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 및 스타일의 가사를 워커홀릭처럼 쏟아내는 덕분이기도 하다.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 ('거짓말')부터 "LOSER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LOSER')까지, GD의 가사는 팝 음악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매끄러움"을 다양한 주제에 맞게 솜씨 좋게 극대화한다. "또 펜을 붙잡고 빼곡히 써 내려가는 가사" ('소년이여')라는 가사에서 엿보이는 경험의 두께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게 아니다.

#아이유

이토록 고전적인

"다만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마음')

일반적으로 아이유의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 [CHAT-SHIRE]와 그 이후 [Palette]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다. 하지만 그 이전, "나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을 그린 '싫은 날'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주일을 그린 '금요일에 만나요', 다가오는 봄에 대한 사랑스러운 투정을 그린 '봄 사랑 벚꽃 말고'를 우선 떠올려 본다.

[CHAT-SHIRE] 이전부터, 아이유의 가사는 한 번도 무언가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그린다"는 것은 21세기 대중음악에서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는 "가사의 이미지화"와는 다른 노선에 위치한 행위다. 그것이 특정한 장면이 되었든 감정이 되었든 보다 직접적이고, 단순화된 언어를 통해 표현하려는 최근의 경향과는 달리, 아이유는 자신, 혹은 가사 속 화자가 느끼는 감정을 멀리 돌아가면서도 정돈되어 있는 묘사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서사를 통해 "그려낸다".

그것이 "이미지화된" 가사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작사에 직접 뛰어들었던 무렵부터 보였던 영리하면서도 우직한 그 방향성이, 가장 차분한 언어로 가장 큰 그리움을 그려내는 '밤편지'의 가사나 간결한 취향의 나열만으로 25살의 자신을 표현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팔레트'의 가사를 탄생시킨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유는 대중음악의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고전적인 미학을 지금 현재 가장 충실하게 구현해내고 있는 아이돌이다. 그 모습이 우아하리만치 아름답다는 사실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종현

시를 넘어선 가사

"내 이 사랑이 작은 방을
벗어나는 날이 오면
우리가 마주 보면
그렇게 된다면"
('일인극 (MONO-Drama)')

아무리 시의 기원이 운율 등 음악적 요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해도, 나는 대중음악의 가사를 시와 등가로 놓는 것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리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가사는 시와 유사할지언정 엄연히 구분되어야 할 독자적인 체계다.

종현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앨범의 제목은 [Poet|Artist]다. "Poet"이라는 단어 뒤에 "Artist"가 붙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충분히 "시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가사들이지만, 그가 쓴 가사에 진정으로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수많은 파장을 지닌 그의 목소리와 치밀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사운드와 비트였다. "우린 함께 있지만 같이 걷질 않잖아" ('Lonely')라는 그저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는 구절도, 장난기와 능청스러움이 어려 있는 "Stay Oh It's a déjà vu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어디서 본 것 같아" ('데자-부')라는 유혹의 마디도, 그것이 종현의 음악과 동반되지 않았을 때 뇌리에 이토록 강렬하게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종현이 "Poet"과 "Artist" 중 어느 쪽에 자신이 더 가깝다고 생각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쓴 가사가 댄스 팝의 쾌활함부터 슬픔을 숨기지 않는 발라드까지, 진폭이 큰 다양한 주제를 넘나듦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대중음악가로서,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했던 사람으로서 그것을 매개할 음악에 대해 언제나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으로써 그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조금 더 오랜 시간 동안 우리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