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앨범 수록곡 듣기 - 보이 그룹 편 [웹진 웨이브]
보이 그룹 편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어느 뮤지션의 어느 앨범이던 타이틀곡부터 듣는다. 타이틀곡 위주로 뮤직비디오가 제작되고 프로모션이 진행되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한 쪽으로 쏠리는 건 당연하다. 공들여 만든 앨범보단 비교적 적은 노력이 요구되는 싱글 혹은 EP의 단위로 시장이 굴러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잘 키운 타이틀곡 하나, 열 수록곡 안 부럽다"란 말이 나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여타 좋은 곡들이 타이틀곡의 아성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저 지나치기엔 너무나 아쉬운 아이돌의 앨범 수록 곡들. 그중에서도 위너, 펜타곤(PENTAGON), 빅스 등, 그룹의 컨셉과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있는 멋진 곡들을 소개한다.
글 | 박희아 (웹진 WEIV 에디터)
남태현이 탈퇴한 후, WINNER는 변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 그룹으로는 이례적으로 데뷔 앨범에서부터 리드미컬함과 강한 베이스를 제거한 뒤 정적인 색채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메인 보컬의 부재는 멤버 각자의 색채를 더욱 또렷이 보여주는 쪽으로 음악적 방향을 트는 계기가 됐고, 덕분에 보컬 파트에도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WINNER는 다른 아이돌 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멤버 숫자가 적은 그룹이다. 그만큼 네 사람이 지닌 각기 다른 캐릭터가 노래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특히 강승윤이 곡 전반을 끌어가며 주된 멜로디 라인을 각인시킨다면, 서브 보컬 김진우는 청아한 목소리로 짧은 파트에 묵직한 울림을 얹는다. 타이틀곡이었던 'Really Really'와 'Love Me Love Me'가 다가 아니다. 무겁고 울적한 'FOOL'에서나, 가벼운 사운드 조합이 발랄하게 다가오는 'ISLAND'에서나 두 사람의 치밀한 협공이 빛난다.
펜타곤은 데뷔 앨범부터 변함없이 고른 완성도를 보여준 몇 안 되는 보이 그룹이다. 보컬과 랩, 작사, 작곡에 이르기까지 주축이 되는 몇 명의 멤버들이 노래의 균형을 잡고, 나머지 멤버들이 사이사이에서 유연한 곡 소화력을 보여준다. 외국인 멤버들의 한국어 발음이 어색할 수도 있지만 단점이 부각되지 않도록 적절한 가사에 그들의 파트를 배치한 것도 기본적인 센스다.
멤버들의 장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면서, 동시에 펜타곤 멤버들의 뛰어난 곡 해석력을 엿볼 만한 트랙들이 있다. [귀 좀 막아줘]에서는 이던의 독특한 보이스와 감칠맛 나는 플로우가 이 그룹의 시그니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고마워]는 안정감 있는 보컬리스트 진호와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 무난히 뚫고 나오는 짜릿한 직선형 보컬 후이가 만나 평범한 발라드 곡에 어떤 특색을 불어넣는지 감상할 수 있다. 멤버들의 섹시한 매력을 엿볼 수 있는 [It's Over]는 덤.
빅스에게는 수많은 명곡들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팀만의 독특한 콘셉트와 결부시킬 수 있을 만한 곡들이 언제나 타이틀곡의 존재감을 뒷받침한다. 어둡고 진득한 시선이 느껴지는 VIXX의 무대를 보고나서 그들의 매력을 더 느끼고 싶을 때 들을 만한 곡들이 매 앨범에 한두 곡씩은 꼭 끼어있다는 소리다. 마치 영화의 후속편을 찾는 사람을 위해 준비된 자리랄까.
청량하고 미성숙한 콘셉트의 보이 그룹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차별화되는 그들만의 매력은 언제나 유효하다. 예를 들어 [INTO THE VOID]의 어두침침하고 음산한 도입부와 주문을 외는 듯한 라비의 래핑, 땅으로 꺼질 듯이 톤다운된 보컬은 어떤가.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난 성취를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팀만의 분위기가 또렷이 묻어나는 곡이 많아 어떤 트랙을 플레이해도 일관된 정서를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정해진 범주에서 벗어난 곡 중에는 나긋한 보컬이 매력적인 [손의 이별]을 추천한다.
'MAMA'에서 '으르렁'을 거쳐 '중독'과 'Call Me Baby'에 이르기까지, 이미 EXO는 너무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드는 사회 비판적인 가사와 강력한 베이스, 웅장한 코러스가 어우러진 댄스곡부터 밝고 세련된 프러포즈 송까지 안 해본 콘셉트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방송 무대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EXO의 모습이 있다면? 말 그대로 "대놓고" 끈적이는 그루비한 보컬과 댄스 퍼포먼스일 것이다. 하지만 골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과감한 퍼포먼스로 콘서트에서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Playboy'와 'Artificial Love'는 최소한의 공간감으로 섹시함을 만들어낸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듣는 재미가 있다. 'Thunder'는 EXO 멤버 CHEN의 초능력 중 하나인 번개라는 소재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촘촘한 세계관의 연장에 감탄하게 만든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 이후 보이 그룹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의 중심에 있는 두 팀을 꼽으라면, 반드시 Wanna One과 NU`EST를 말해야 한다. Wanna One의 'Wanna Be'는 짧은 시간동안 이들이 거둔 성취를 자축하는 듯한 밝은 트랙이다. 프로그램 당시 열한 명의 멤버가 갖고 있던 캐릭터와 유행어를 하나의 곡에 모두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한 팀의 짧은 역사를 축소해놓은 곡이라고 봐도 된다.
NU`EST는 팀이 본격적으로 주목 받기 전에도 뛰어난 앨범 완성도 덕분에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여러 차례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중 'ONEKIS2'는 제목처럼 부드럽고 로맨틱한 노래다. 동화같은 가사와 90년대 후반 아이돌 발라드의 정석을 따르는 구성에서 멤버들의 보컬과 랩이 차분하게 울려퍼진다. 'Daybreak'는 멤버 민현과 JR의 듀엣곡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이면에 서정성이 느껴지는 민현의 보컬과 거친 보이스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JR의 랩이 잘 어울리는 트랙이다.
데뷔 5년차가 된 방탄소년단은 앨범 판매량, 팬카페 회원수 등 여러 가지 지표로 보듯 상당히 점층적인 스텝으로 성장해온 보이 그룹이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룹이기 때문에 매 앨범에 걸쳐 음악 스타일의 변화도 극적이고, 가사에서도 그들의 역사가 잘 드러난다.
'Whalien 52'는 방탄소년단이 인기의 정점을 찍기 직전에 발매했던 "화양연화" 시리즈의 수록곡이다. 광활한 바다의 전경과 고래 소리를 연상시키는 도입이 독특하며, 미래를 가늠해보는 소년의 고민이 담긴 비유적 가사에서 평범한 소재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기지가 돋보인다.
'Lost'는 방탄소년단 보컬 라인 멤버들의 성장이 눈에 띄는 세련된 트랙이었다. 최근 발표한 앨범에서는 이전까지 래퍼 라인 멤버들 주축으로 돌아가던 방탄소년단에서 처음으로 보컬 지민이 인트로를 맡았다. 신비로운 사운드가 감싸는 지민의 공허한 보컬이 낯선 신세계를 연상시키는 섬세한 스토리와 조화를 이룬다. The Chainsmokers와 함께 작업한 'Best Of Me'는 이미 익숙해진 서구 유행의 작법을 한국어 가사로 듣는 재미를 주는데, 여기서 방탄소년단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이 어딘지 또렷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