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래퍼들의 과외 활동 [웹진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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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래퍼들의 과외 활동 [웹진 웨이브]

2017.09.08
Special

아이돌 래퍼들의 과외 활동

한때는 "노래를 못하면 래퍼가 된다"는 말도 있었다. 실은 지금도 있다. 하지만 환경에 적응하듯 아이돌 노래 속 랩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제 그런 말을 자주 하진 않는다. 다만 아이돌 랩에 거는 기대가 대체로 크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아이돌 래퍼들은 사랑받는다. K-POP 속 랩의 자리가, 듣는 이의 마음이 가장 들뜨는 순간들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랑받는 더 큰 이유는 어쩌면 세간의 평가가 썩 높지만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최근 몇 년간은 독보적인 인물들의 등장과 랩 컴피티션 방송 등을 통해 편견도 조금은 깨지고 있는 듯하다. 그런 만큼 활발하고 진지하게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아이돌 래퍼들에게 더욱 눈길이 가게 된다.

글 | 미묘 (웹진 idology 편집장)

#독보적인 걸 어떡해

이런 목록이 나올 때면 누구라도 가장 먼저 떠올릴 이들이 있다. 너무 당연히 거론되곤 해서 어쩌면 당사자들은 슬슬 지겨울지도 모른다. 누구보다도 독보적인 존재감과 실력을 갖췄고, 아이돌이 되기 전 언더그라운드 경력을 갖기도 했으며, 아이돌과 힙합 신을 오가면서 괄목할 만할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아이돌의 랩에 대한 편견을 싹 가시게 해주는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이다.

못 가진 것이라곤 없는 G-DRAGON을 당연히 꼽아야겠다. BIGBANG에서도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만, 2009년 솔로 데뷔 후 특히 [One Of A Kind] 미니앨범 이후론 그 누구도 감히 의심할 수 없게 된 인물. 많은 보이그룹에게 롤모델이 되며 "포스트-지디"로 여겨지는 아이돌의 긴 목록을 낳기도 했다.

이들 중 이런 인식의 벽을 가장 훌륭하게 뛰어넘은 것은 블락비의 지코일 것이다. G-DRAGON이 아이돌과 힙합 뮤지션 모두를 멋지게 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면, 지코는 아이돌이기에 더 멋진 힙합, 힙합 뮤지션이기에 더 멋진 아이돌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다. G-DRAGON의 매력이 시크한 천재의 심드렁함이라면, 지코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감각을 보여주는데 인상은 귀염상인 것이 매력이랄까.

#힙합 팀으로 간다
< Vernon & MOBB >

팀 형태로 멋진 활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Vernon도 세븐틴의 힙합 유닛에 소속돼 있는 등, 팀 내에 힙합 유닛을 두는 경우도 많다. 최근 호야의 탈퇴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지만, 인피니트의 힙합 유닛 인피니트H도 주목할 만한 팀이었다. 장동우와 호야의 듀오로, 힙합의 소위 "진정성"보다는 스타일과 에너지를 가져오면서 아이돌적인 친근함도 놓치지 않았던 기획. iKON의 BOBBY와 WINNER의 MINO가 결성한 크로스 유닛 MOBB은 각자의 팀에서 소화하기엔 애매하지만 상반된 매력의 두 래퍼가 일으키는 시너지를 잘 보여줬다.

< 방용국 & 젤로 >

방용국과 젤로는 B.A.P의 힙합 정체성을 두텁게 하는 핵심 멤버로 활동하는데, B.A.P 데뷔 전 듀오로 활동한 적도 있다. 방탄소년단의 Rap Monster와 SUGA 역시 모두 언더그라운드 활동도 했고 각기 인상적인 믹스테잎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방탄소년단이 너무 잘 나가고 있어서 둘의 솔로 작업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울 정도.

#재능이 많은 걸 어떡해

솔로 래퍼를 넘어서 예능인으로서의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들도 있다. 잠깐, 이 글의 첫 분류에 비해 이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다재다능한 멀티 탤런트를 지녔다는 점이 더 두드러진다고 보는 게 좋겠다.

< 문별 & 효연 >

랩도 랩이지만 보컬이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인 경우도 있다. "다른 그룹 가면 보컬"이란 말을 듣는 마마무의 문별, 허스키한 톤의 카리스마가 두드러지는 소녀시대 효연 등이 그렇다. 정일훈은 비투비의 멤버이자 래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편, 프로듀서로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비투비의 곡들 외에도 CLC를 비롯한 걸그룹 작사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최근 펜타곤의 'Beautiful'에서 본격적인 프로듀서의 걸음을 내딛기도 했다.

< 엠버 & 현아 & 전지윤 >

f(x)의 엠버는 내성적인 듯 부드러운 호소력을 지닌 보컬리스트이기도 하며, 진솔하고 과감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길도 걷고 있다. 4minute 출신의 현아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 존재감을 뽐내며 정상의 퍼포머로 군림하고 있으며, 역시 4minute에서 개성적인 모습을 보여준 전지윤은 "언프리티 랩스타"를 통해 래퍼의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컴피티션을 통해 매력적인 "인물"로서 주목을 받기도 한 점은 싱어송라이터에겐 좋은 자산이 되곤 하기에, 점차 작곡과 보컬을 보여주고 있는 행보에 주목하게 된다.

#래퍼로 간다

꼭 홀로서기를 하지는 않더라도, 솔로 래퍼로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특히 걸그룹에 있어 "언프리티 랩스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데, "걸그룹 래퍼"라는 폄하의 시선을 시원하게 뚫고 나올 계기가 된 경우가 많다. 특유의 코맹맹이 톤을 거의 걸그룹 표준 공식의 하나로 만들어버린 AOA의 지민을 비롯해, 엑시(우주소녀), 예지(피에스타), 유빈(원더걸스) 등을 들 수 있다. 아이돌로서의 탁월한 퍼포먼스 감각이 독자적인 스타일과 실력을 만날 때 어떤 랩을 보여줄 수 있는지 증명한 사례들인 셈이다.

< 기희현 & 주헌 & 라비 >

소속팀 자체의 활동을 통해 대중의 이목을 주목시킨 아이돌 래퍼들은 많다. DIA(다이아)의 기희현, 몬스타엑스의 주헌, 빅스의 라비, 세븐틴의 Vernon 등이 그렇다. 그 매력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은 종종 피처링이나 컬래버레이션 작업에 불려 다니기도 하고, 소속팀의 음반에 솔로 트랙을 수록하거나, 또는 보다 본격적인 솔로 래퍼로서의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아이돌 음악에서 랩에 큰 기대를 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어쩌면 바로 이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인식도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지 모른다. 래퍼로서의 작업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돌 음반 속에서 래퍼의 역할을 증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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